셋째 비록 점진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부가 증가하면 정의와 분별력 만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과 같은 총체적인 도덕적 가치의 추구 능력도 증가할 것이다. 끝으로 그는 권력자를 숭상하고 빈자와 비천한자를 경멸하는 성향은 우리들의 도덕감의 타락을 가져오는 가장 큰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원인이러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일부 소수의 도덕적 엘리트는 그런 타락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태어난『국부론』은 경제학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논의서이며 간단 명료한 자연적 자유의 체계로서 시장의 법칙(laws of market)을 천명한다. 그렇다고 스미스가 자유시장 경제를 그 자체로서 찬미했던 것은 아니다. 시장의 목적은 풍요의 진보에 있다. 스미스는 경제성장은 불평등을 낳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같은 불평등이 모든 사람을 위한 더 큰 부의 증대와 양립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모두를 위한 부를 가져다 주는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노동분업과 시장구조에 의해 빈민도 보편적 풍요(universal opulence)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그가 시장경제를 정당화한 것은 일부만이 아니라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상업의 도덕적 결과에 관계 없이 사회의 행복은 무엇보다도 그 사회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이 향상 되느냐 여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 조순 외(저), 아담 스미스 연구 (민음사, 1990)
아담 스미스 하면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리게 된다. 과학적 경제학의 아버지이며 자유시장경제체제의 옹호자. 이것이 아담 스미스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정작 아담 스미스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폐단-부와 빈곤의 양극화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었던 것일까?
리치 디보스는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아담 스미스는 냉혈한이 아니었다고 변호한다. 그는 오히려 동정심과 도덕적 가치라는 순진한 요인(factor)을 가정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각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본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가 상정한 그 각 ‘개인’은, 단지 현재 경제학의 가정과 같이 ‘효용’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비심과 같은 총체적인 도덕적 가치의 추구 능력도 증가해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 가져올 시장의 불평등을, 인간의 도덕적 가치로 완충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년에 도덕철학 교수를 했다던가…?